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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중 나를 찾는 독서법

육아 중 "나는 지금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아이가 하루에 "엄마"를 몇 번이나 부르는지 세어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200번을 넘겼습니다. 그 순간 웃음이 나오다가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지워지는 기분, 이 글이 그 감각을 아는 분들께 작은 출구가 되길 바랍니다.

자아회복이 어려운 이유

육아 번아웃(Burnou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아웃이란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뜻하는데, 직장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양육자에게 훨씬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2023년 육아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68.3%가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정서적 소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저 역시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아이가 잠드는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소파에 앉을 수 있었는데, 그 시간에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정작 '나는 오늘 뭘 원했나'라는 질문은 한 번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이 흔들릴 때입니다. 자아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말하는데, 이것이 불안정해지면 단순한 피로감과 다른 종류의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엄마라는 역할, 아내라는 역할 뒤에서 정작 '나'라는 개인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이 공허함은 충분한 수면이나 카페인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독서치료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독서치료(Bibliotherap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독서치료란 책 속의 텍스트를 매개로 심리적 위안과 자기 이해를 얻는 치료적 접근법으로, 미국도서관협회(ALA)에서도 공인된 심리 지원 방법 중 하나입니다(출처: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거창하게 들리지만 본질은 간단합니다. 책에서 나와 꼭 닮은 문장을 발견하는 것, 그것 하나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이 뭘 해결해 주겠어'라는 생각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잠든 늦은 밤 헤르만 헤세의 문장 하나를 읽다가 멈춘 적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길을 따라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힘들었던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위대한 작가도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게 어려웠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습니다.

책이 영상보다 자기 회복에 효과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상 콘텐츠는 화자의 목소리와 속도, 감정이 이미 입혀진 채로 전달됩니다. 반면 텍스트는 독자가 스스로 소리를 입힙니다. 내가 그 문장을 읽으면 내 목소리로 들립니다. 내면화(Internalization)가 훨씬 빠르게 일어납니다. 내면화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가 자신의 사고와 정서 체계 안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책이 '내 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그 내면화가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독서를 통한 자아회복에서 실제로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거창한 목표 없이 시작한다. 책 한 권을 완독하려는 의무감은 독서를 금방 지치게 만듭니다.
  •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 하나를 찾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문장 하나가 오늘의 성과입니다.
  • 소설·에세이·대중 교양서를 번갈아 읽는다. 한 장르만 읽으면 오히려 금방 질립니다.
  • 책을 읽을 물리적 여백을 정기적으로 확보한다. 남편이나 파트너에게 구체적인 시간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백을 만들어야 독서가 가능하다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책을 통해 나를 찾으라"는 조언은 맞는 말이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물리적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박 육아 상황에서 1시간의 여백조차 없는 분들께 "책 읽어요"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또 하나의 숙제를 얹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이가 낮잠 자는 30분 동안 책을 펼쳤다가 허둥지둥 집안일을 하고, 결국 한 페이지도 못 읽고 낮잠이 끝나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그게 몇 달이나 이어졌습니다.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배우자와 협의해서 한 달에 한 번, 혹은 36시간이 부담스럽다면 반나절이라도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루틴(Routine)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루틴이란 특정 행동이 일정한 주기로 자동화되는 습관 구조를 뜻합니다. 여백 자체를 루틴화하면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에너지 소모가 훨씬 줄어듭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이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양육자가 숨 쉴 수 있는 사회적 돌봄 인프라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현실은 분명합니다. 그 구조적 한계 안에서도 작은 여백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여백에 책 한 권을 놓는 것이 지금 저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자기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육아 중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묻어두면 묻어둘수록 번아웃은 더 빨리 찾아왔습니다. 완벽한 여건을 기다리기보다, 오늘 아이가 잠든 20분이라도 책 한 권을 꺼내 드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문장 하나가 불쑥 마음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그 문장이 지금의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줬습니다.


참고: https://youtu.be/-PmZ2KcfGCI?si=fMyyLH_jqtD_fH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