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밤 열한 시, 아이를 겨우 재우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스마트폰을 켭니다. 쇼츠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자정이 지나 있고, 머릿속은 도리어 더 산만해져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책 한 권을 두기 시작하면서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독서가 진짜 휴식이 될 수 있는지, 지친 육아맘의 시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독서와 영상, 어떤 게 더 편한 휴식일까

독서는 어렵고 영상은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집안일을 해치우고 나면, 글자를 읽을 기력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써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영상 콘텐츠에는 수동적 소비(passive consumption)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수동적 소비란 콘텐츠가 제공하는 속도와 방향에 시청자가 그대로 끌려가는 방식으로, 뇌가 거의 관여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자극이 들어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피로할 때 쉽게 손이 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면 독서는 능동적 소화(active comprehension)의 행위입니다. 능동적 소화란 독자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고, 문장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며, 감정과 사고를 직접 개입시키는 과정을 뜻합니다. 이 과정이 오히려 뇌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2009년 영국 서섹스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6분간의 독서만으로 스트레스 수준이 최대 68% 감소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University of Sussex).

물론 "지쳐서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온다"는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저 역시 책을 펼쳤다가 같은 줄을 세 번 읽고 덮은 날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독서의 실패라기보다는, 그날의 내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타이머와 여운, 육아맘이 독서를 지속하는 방법

독서를 꾸준히 하려면 의지보다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쪽입니다. PT(personal training), 즉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면 억지로라도 운동하게 되듯, 독서도 외부에서 강제하는 장치가 없으면 금방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타이머 독서입니다. 처음에는 30분으로 시작했다가 아이가 자다 깨는 날은 15분으로 줄이기도 했습니다. 15분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책에 집중하면,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인지 부하(cognitive load) 관점에서 보면, 인지 부하란 뇌가 한 번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을 의미하는데, 짧은 시간이라도 단일 자극에 집중하면 산만하게 여러 정보를 처리할 때보다 뇌의 피로 회복이 빠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독서 후 여운을 즐기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책을 덮고 잠들기 전 5분,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서 조용히 곱씹는 것이 저에게는 하루 중 가장 온전히 '나'로 있는 시간이 됩니다. 편집자의 해설(editorial commentary), 즉 작품의 맥락과 작가의 의도를 풀어주는 전문가의 분석 글이 소설 본문만큼 감동적일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도 그 경험이 있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육아맘이 독서를 지속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타이머를 15~30분 단위로 맞춰 '작은 독서 단위'를 만든다
  • 책은 항상 손에 닿는 자리(침대 머리맡, 소파 팔걸이)에 둔다
  • 완독을 목표로 삼지 않고, 오늘 읽은 문장 하나만 기억해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 독서 모임처럼 외부 강제 장치를 활용해 리딩 루틴(reading routine)을 만든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43%로, 2019년 52.1%에 비해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입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책을 읽고 싶지만 못 읽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솔직히 안도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서 책이 해주는 일

독서를 통해 감정에 언어가 생긴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모호하게 떠돌던 감정이 책 속 문장 하나에서 딱 걸려서 명확해지는 순간, 그때의 해방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저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다가, 자식 때문에 고통받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그날 밤 저에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독서를 단순한 지식 습득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불안할 때 기댈 수 있는 '내 속도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두 관점 모두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책은 저에게 세상의 소음에서 잠시 숨는 동굴이기도 하고, 읽고 나서 아이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이런 문장이 있었어"라고 꺼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독서가 모든 피로를 해소해 주는 만능 도구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설거지가 쌓여 있고 아이가 열이 나는 날에 책을 펼치는 건 그림의 떡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날, 15분이라도 타이머를 맞추고 앉아 볼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처럼, 한 편의 짧은 이야기가 며칠 동안 마음속에 살아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엄마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한 명의 독자로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이, 사실 내일을 버티게 하는 가장 조용한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스마트폰 대신 책 한 페이지를 먼저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완벽하게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참고: https://youtu.be/gkjnzKAKrT0?si=GjrV32GkKxr2Ebu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