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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아이가 유튜브 영상을 보는 동안 저는 설거지를 마쳤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은 편했습니다. 조용하고, 울지 않고,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조용함을 사준 대가가 혹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아닐까. 2023년 국민독서 실태 조사에서 성인 독서율이 38.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 그 불안이 막연한 감정이 아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깊은 사유: 읽기를 멈추면 뇌가 먼저 변한다

책을 멀리하면 의지력이 약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뇌과학 연구들은 독서를 중단했을 때 생기는 변화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님을 꽤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인지신경과학자 메리언 울프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는 본래 읽기 회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읽기 회로란 시각, 언어, 추론, 감정 처리 영역을 새롭게 연결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신경망을 의미합니다. 이 회로는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use it or lose it' 원칙, 즉 쓰지 않는 신경 연결은 점차 소멸한다는 법칙이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엔의 연구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뇌의 시각 단어 형태 영역(VWFA)은 원래 얼굴이나 사물을 인식하던 회로를 글 읽기 용도로 전용한 결과입니다. VWFA란 뇌 좌반구 후두엽에 위치하며 문자를 빠르게 인식하는 데 특화된 영역으로, 읽기를 중단하면 다른 시각 처리 용도로 점차 대체됩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연구가 특히 무서웠던 이유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자리를 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MIT 미디어 랩의 연구에서는 AI에 의존해 글을 쓴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뇌 신경 연결성이 약하고 내용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라고 부릅니다. 인지적 부채란 사유를 외부 도구에 위탁할수록 뇌 자체의 처리 능력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입니다.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줄 때마다 제가 느꼈던 막연한 불안이 사실은 꽤 정확한 감각이었던 셈입니다.

숏폼 콘텐츠나 짧은 자막에 익숙해진 뇌는 긴 호흡의 논리를 따라가는 데 피로를 느낍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흑백 논리로 환원하려는 경향, 이것이 뇌과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인내심(cognitive endurance) 소멸과 연결됩니다. 인지적 인내심이란 불확실하고 복잡한 정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처리하는 정신적 지구력을 뜻합니다. 댓글창에서 흔히 보이는 극단적 단순화나 즉각적 혐오 반응이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읽기를 멈출 때 잃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깊이 읽기 회로의 약화로 복잡한 텍스트를 처리하는 능력 저하
  • 인지적 부채 누적으로 스스로 사고하는 대신 외부 자극에 의존하는 수동성 강화
  • 인지적 인내심 감소로 흑백 논리와 단순 선동에 취약해지는 비판적 사고력 약화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 읽지 않는 사회가 잃는 두 가지

독서가 공감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연구 결과로도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토론토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마음 이론(Theory of Mind) 과제 수행 능력이 높게 나타납니다. 마음 이론이란 타인의 감정, 의도, 믿음을 추론하는 인지 능력으로, 공감의 인지적 토대가 되는 심리학 개념입니다(출처: 토론토 대학 연구).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린 실험에서는 단 몇 분간 문학 소설을 읽은 것만으로도 마음 이론 과제 점수가 즉각 향상되었습니다. 영상은 시청자를 이야기 바깥에 세워두지만, 문장은 독자를 내부로 끌어들입니다. 주인공의 슬픔을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고 채워 넣는 과정이 바로 마음 이론을 훈련시키는 기제입니다. 제 경험상 소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등장인물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아도 납득하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납득'이 공감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전 손택은 독서를 타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윤리적 행위라고 표현했습니다. 읽지 않는 사회는 타인의 내면을 상상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조롱하고 낙인찍습니다. 온라인 댓글창의 잔혹함이 어쩌면 마음 이론의 부재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일 수 있다는 시각, 저는 이것이 꽤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비판적 사고 측면에서는 역사가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줍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나치의 책 소각처럼 폭압적 검열은 오히려 저항을 불러일으켜 실패로 끝났습니다. 반면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린 사회는 다릅니다. 책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자극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책을 내려놓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미디어 비평가 닐 포스트먼은 저서 '죽도록 즐기기'에서 진실이 억압이 아닌 무관심 속에 익사할 것을 경고했습니다(출처: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Penguin Books).

저는 솔직히 이 부분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멀리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저는 릴스와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긴 글 한 편 끝까지 읽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권력이 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내려놓고 있다는 경고가, 저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모든 책임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학교와 직장, 일상 전반에서 효율과 속도만을 강요받는 구조 안에서 긴 호흡의 독서를 유지하기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버거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변화는 결국 거실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오늘 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화면을 끄고 책 한 권을 펼쳐 드는 것. 거창한 선언 없이 그 조용한 행동이 아이의 읽기 회로와 마음 이론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떤 권력도 스스로 읽고 질문하는 사람의 내면을 무너뜨릴 수 없다면, 그 저항은 서점이 아니라 오늘 밤 우리 거실에서 시작됩니다.


참고: https://youtu.be/UV2xqZ42wrg?si=B_HQI35gPndF2o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