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한동안 책을 끊고 살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입니다. 몸은 늘 피곤하고, 아이가 잠든 틈에 뭔가를 해보려 해도 막상 책을 펼치면 눈이 감겼습니다. '엄마'라는 이름 하나가 제 이름을 완전히 덮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 그게 책을 다시 잡게 만든 역설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카페 독서가 정답이라는 말, 제 경험상 반만 맞습니다
독서 습관을 이야기할 때 카페를 빠뜨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 것, 들으면 맞는 말입니다. 카페 독서는 실제로 몰입도(immersion level)를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몰입도란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하나의 대상에 인지 자원을 집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카페라는 공간적 맥락 전환이 집에서 누적된 생활 루틴의 자동적 반응을 끊어주기 때문에, 같은 한 시간을 읽더라도 정보 처리 효율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해보니 카페 독서에는 또 다른 심리적 장치가 작동합니다. 커피값과 이동 시간을 '투자'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최소 목표 분량을 채우려는 자기 강화(self-reinforcement) 효과가 생깁니다. 자기 강화란 특정 행동에 스스로 보상을 연결하여 그 행동의 반복 가능성을 높이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핸드폰도 덜 보게 되고, 괜히 멋있어 보이는 기분까지 듭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어본 솔직한 감상입니다.
다만 여기서부터가 제 경험상 결이 다른 부분입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쫓아다니다 씻지도 못하고 저녁을 맞는 날, 클래식 카페는 그림의 떡입니다. 카페 독서를 권유하는 이야기들이 좋은 조언임은 분명하지만, 혼자 이동할 시간조차 눈치가 보이는 육아 현실과는 간극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페가 여의치 않은 날엔 장소 전환의 개념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주방 식탁 → 소파 → 아이 방 바닥, 이 순서로 자리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이 꽤 줄어들었습니다.
독서 환경 선택 시 현실적으로 고려할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동 가능 여부: 아이 돌봄 공백 시간이 확보되는지 먼저 확인
- 소음 환경: 완전한 고요함보다 일정한 백색소음이 오히려 집중에 유리한 경우도 있음
- 시간 단위: 2시간 블록이 어렵다면 20~30분 단위로 나눠 장소를 바꾸는 것도 전략
메멘토모리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게 된 시점
일반적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철학이나 예술 개념으로만 접근하기 쉽습니다. 메멘토 모리란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삶의 유한성을 인식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사유 방식입니다. 젊을 때는 이 개념이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는데, 저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말이 몸에 와닿았습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자주 떠오릅니다. 아이가 빠르게 자라는 걸 보면서 시간의 비가역성(irreversibility), 즉 한번 지나간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이 질문에 답을 주지는 않지만, 질문을 유지시켜 준 것이 책이었습니다.
목 디스크로 인해 독서 보조 장비 없이는 책 읽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묘하게 공감했습니다. 저도 출산 이후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오래 앉아 있기 힘든 날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 싫은 날에도 신발을 신는 것처럼, 읽고 싶지 않은 날에도 책을 펼치는 행위 자체가 저를 저로 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책이 알려준 삶의 유한함은 역설적으로 더 충실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진단 환자 수는 2017년 약 68만 명에서 2022년 약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이 수치를 보면서 단순히 치료나 약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중심 공백'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가 느껴집니다. 책이 그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는 생각은, 경험상 단순한 위로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이 흔들릴 때 책을 다시 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멋있는 어른이 될 거라 막연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더 선명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이 아이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요. 책 속에서 만나는 존경할 만한 어른들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흔들리고, 그럼에도 계속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서사(self-narrative)의 관점에서 보면,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자신의 삶을 어떤 이야기로 구성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자기 서사란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의미 있게 연결하여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일관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심리적 작업입니다. 방송 생활 10년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 저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 압니다. 저도 오래 책을 손에서 놓고 살면서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고 있었으니까요.
통계청의 '국민 여가 활동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여가 활동으로 독서를 선택하는 비율은 꾸준히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3년 기준 성인 월 평균 독서량은 0.6권에 그쳤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이 수치 앞에서 독서를 권유하는 것이 설득력 없는 이상론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독서율이 낮다는 건, 그만큼 삶의 중심을 잡는 내면의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육아 중 독서가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물리적 시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더 큰 장벽은 '이걸 지금 해도 되나'라는 죄책감입니다. 책을 읽는 그 20분 동안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은 기분. 그 죄책감을 넘어서면 비로소 보이는 게 있습니다. 책을 읽는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생깁니다. 그게 지식이든, 태도든, 아니면 그냥 '엄마도 뭔가를 계속 배우는 사람'이라는 장면 하나든 간에요.
책 읽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날들을 솔직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몸이 너무 피곤해서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
- 책을 펼쳤다가 5분 만에 아이한테 불려 가는 날
- 읽고는 싶은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날
이 세 가지 상황에서 저는 억지로 앉아 있는 대신, 오디오북이나 단 한 페이지라도 읽는 방식으로 '오늘도 책을 열었다'는 사실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완독(完讀)이 목표가 아니라, 연결이 목표였습니다.
결국 독서가 저에게 준 것은 지식보다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맞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진짜 중요한 건가', 이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질문들이요. 팍팍한 일상 속에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꽤 크게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독서 환경을 갖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가 잠든 10분, 구겨진 소파 한 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나는 아직도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버거운 육아를 하면서도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방법이었습니다. 오늘 잠든 아이 곁에서 책 한 페이지를 넘겨보셨다면, 그걸로 오늘은 충분합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행복드림도서관
- 병렬 독서
- 독서 습관
- 뇌과학
- 독서습관
- 독서환경격차
- 북스토퍼
- 독서 용품
- 다이소 독서템
- 책읽기
- 문해력
- 어휘력
- 자기계발
- 농어촌독서
- 독서
- 독서법
- 성인문해력
- 엄마 독서
- 교과서 학습
- 비판적사고
- 완독 습관
- 클립형 독서대
- 독서교육
- 유창성의착각
- 가성비 문구
- 육아 중 독서
- 엄마독서
- 자기 기본값
- 육아
- 형광 테이프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